이 게임도 비주얼 노벨이라고 할 수 있나? 하여튼, 도키메키 메모리얼로 대표되는, 배경 위에 포트레이트가 나오고 텍스트 대사로 게임이 진행되는 게임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제작 규모가 영세
하고 게임의 마감이 꼼꼼하지 않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던 터라, 재미있다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플레이하지 않고 있다가 국전에서 눈에 띈 김에 충동적으로 구매. 사실 이런 타입의 게임이라면 도키메키 메모리얼 3, 사쿠라대전 : 뜨거운 열정으로
이런 편견이 생긴 것도 당연하다 싶기도 하다.
어떻든 그렇게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플레이를 시작했는데, 웬걸, 구입하고 나서 주말 포함 4일 동안 아무 일도 안하고 이 타이틀만 플레이하고 말았다. 플레이 타임도 의외로 길어서 거의 20여시간에 육박하는 듯.
사실 뒷북도 한참 뒷북인 셈이니 게임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하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그래도 간단히 적어보자면, 게임은 사건 조사와 재판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 사건 조사는 일반적인 비주얼 노벨이나 텍스트 어드벤처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부분으로, 대사 클릭 노가다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과정의 목적은 재판에서 사용할 증거를 모아두는 것.
다행히도
(?) 수집해야 할 증거를 빼먹고 수집하지 않으면 게임이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조사를 소홀히 했다고 재판에서 질 염려는 없지만, 덕분에 모든 대사와 선택지를 읽고 모든 지역을 여러 번 탐방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짜증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게임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본편은 어디까지나 재판! 재판은 검사측이 소환한 증인의 증언을 듣고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 나가며 용의자가 무죄라는 것을 밝혀 나가는 과정인데, 이것이 이 동네 법정에는 위증죄가 없는 모양인지 부르는 족족 증인들이 거짓말을 해 대는 터라 대사를 주의깊게 읽고 증인의 거짓말을 밝혀내야 한다.
이 과정이 굉장히 재미있는데, 일단 플레이를 하고 있는 나 스스로가 추리를 해 나간다는 것 자체가 짜릿한 쾌감을 준다. 예를 들어 소년 탐정 김전일을 보고 있었다면 저 녀석 왼손잡이쟎아! 이런 트릭쯤은 나도 안다고!라고 마음 속으로 외치면서 모종의 답답함과 억울함
(?)을 느낄 타이밍에 직접 범인은 왼손잡이입니다. 따라서 당신의 증언과 모순됩니다!라고 지적할 수 있고, 내 추리로 인해 사건이 풀리고 진행되어 간다는 것은 게임에 푹 빠져들게 하는 요소다.
이 과정을 맛깔스럽게 만드는 요소가 여럿 있는데, 역전재판의 일러스트나 패키지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나루호도 류이치
(북미판에서는 Phoenix Wright)의 손가락질-이의 제기가 그 중 단연 첫 번째다.
증언이 상당히 교묘하게 쓰여져 있고, 증거 물품도 보통 10여개 이상으로 상당히 많아서 어떤 증거가 증인의 거짓말을 밝힐 수 있는지 알아내기 꽤 어렵기 때문에, 증언 내의 모순을 추리해내고 이의를 제기하는 쾌감이 상당하다. 이의를 제기할 떄 나루호도 류이치가 이의 있소!
(북미판에서는 Objection!)라고 외친 뒤, 리듬감 있게 양 손으로 책상을 내리친 후 손가락질하는 장면에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증인 압박
(북미판에서는 Hold It!)도 재미있는 요소인데, 증인의 진술을 듣는 도중 미심쩍은 부분이 있을 때 압박을 사용하면 증인이 우물쭈물거리며 수상한 모습을 보이거나, 더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거나, 진술을 바꾸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대사에 효과적으로 집중하게 만드는 동시에 게임의 어려운 부분에 힌트를 주는 어드바이스로도 동작한다.
(남발해도 페널티가 없다는 단점이 있긴 하다) 증인을 압박하고 모순을 지적하다보면 판사나 검사가 변호인의 주장을 증명할 증거가 있냐고 물어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 때 증거를 제출할 때 외치는 받아라!
(북미판에서는 Take That!)라는 대사도 호쾌하다.
더군다나 NDS로 컨버전되면서 무려 음성 인식 기능이 추가되었는데, 이의를 제기하거나, 증인을 압박하거나, 증거를 제출할 타이밍에 Y버튼을 누르고 NDS의 마이크에 '이의있소!', '잠깐!', '받아라!'라고 외치면 게임이 진행된다! 증인의 거짓말이 하나씩 밝혀지고 점점 사건에 진상에 다가갈 수록 배경 음악이 마치 슈팅 게임의 보스가 2단계 변신하면서 나올 법한 빠른 템포에 격정적인 음악으로 바뀌는데,
(역전재판은 음악도 좋다! 배경 음악이 분위기에 너무 잘 어울린다) 이 음악을 배경으로 이의있소!를 호쾌하게 육성으로 외치는 기분은 지금까지의 게임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
여기에 캡콤 게임다운 캐릭터 성도 게임에 흥미를 더하는 데에 한 몫하는데, 손가락 까딱거리기와 조소가 특기인 상대역 검사인 미쯔루기 레이지
(북미판에서는 Miles Edgeworth)를 비롯하여 도무지 정상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개성적인 캐릭터 열전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 GBA로 발매되었던 1편에 수록된 에피소드 1~4의 이미지가 고해상도로 리뉴얼되었고, 추가된 에피소드 5의 분량은 디아블로 2 확장팩에서 추가된 Act 5와 비슷한 비율의 규모로, 단독으로 8시간 가량 진행해야 클리어할 수 있는 볼륨이라 GBA판을 클리어했더라도 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이의 제기=쯧코미 넣기와 터치 스크린/마이크가 만들어 낸 몰입감에 대해서는 한 번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도 하다. 여하튼 역전재판 : 부활하는 역전은
완다와 거상[manari:vu]에 버금가게 몰입할 만한 타이틀이니, 혹시라도 해 보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반드시 해 보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