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입한 지 3일, 12시간 만에 클리어. 클리어한 지는 대략 2주 정도 지났지만, 어떻든 지금에야 간단히 리뷰. 게임 업계에 몸 담은 지 이제 슬슬 5년이 되어가다보니 그래도 게임 제작 프로세스라는 게 어떤 형태고, 게임이란 게 어떤 식으로 기획되고 만들어지는 지도 조금씩은 알겠다 싶은데, 완다와 거상은 플레이 시종일관 솔직히 이 게임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건지 감이 안 잡힌다는 느낌이 들었다.
리뷰로 계속 (스포일러 주의)
최근 혁신적이라고 불렸던 게임들도 어느 정도는 이런 게 되면 재밌지 않을까? 싶었던 것들이나 기존 게임의 개념을 발전시킨 것이 기본이지, 완다와 거상처럼 생각도 못 해본 방향으로 나간 게임은 그리 많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얘기다. 예를 들어 심즈는 그 이전 수많은 심시리즈의 계통수 상에서 최근 발견된 변종이고, 하프라이프 2 역시 FPS의 재미 요소 위에 사실적인 물리 엔진을 얹어서 만들어진 놈이다. 둠3나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는 자신의 관성대로 계속 사실적인 묘사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놈들이고, 갓오브워는 기존 액션 게임들의 시도들을 수준높게 다듬어 보여줬다. 하지만 이런 게임들은 완다와 거상처럼 아예 기존 게임의 계통수를 완전히 벗어나 있지는 않다.
계통수에서 벗어나 있는 게 뭐가 문제냐? 일단 전례가 없으니 프로젝트를 런칭하기 쉽지 않을 거다. 게임을 구상한 것이 성공한 게임, 이코의 제작자가 아니었다면 '거상과 싸운다, 물리 엔진을 쓴다, 매달려서 약점을 찌르면 죽는다'는 내용을 듣고 얼마나 재미있을 지를 상상해서 프로젝트를 런칭시켜줬을까 의문이다. 팀원들에게도 어떤 게임을 만드는 지 방향을 공유하기 어려웠을 거다. 전례가 없으니 거상과 싸우는 다이나믹한 비주얼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는지, 조작은 어떻게 되어야 할 지 모조리 바닥부터 시작해야 했을테니.
또 PS2가 어느 정도 크기의 월드와 거상을 버텨낼 수 있는지, 물리 계산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도 시험해봐야 하고, 게임 플레이가 거의 직접적으로 물리 엔진에 의존하고 있으니 게임의 난이도를 조정할 수 있는 옵션도 별로 없어서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서 온갖 장치를 구상해야 했을 것이다. 요는, 안 그래도 게임 제작이란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기 쉬운 데, 기술, 화면 구성, 게임 플레이, 난이도 등 모든 국면에서 도전을 하는 용기(혹은 무모함)는 도대체 무엇을 기반으로 하고 있나가 궁금하단 거다. 앞서 예로 든 혁신적인 게임들은 자신들이 잘하는 것, 혹은 잘할 수 있는 것 위에 도전 과제를 한 두가지로 집중했다.
(물론 괴혼도 기존 게임의 계통수에 편입시키기 어려운 놈이고 물리 엔진에 게임을 직접적으로 의존하지만, 물리 엔진이 플레이어에게 영향을 미치진 않으므로 완다와 거상만큼 플레이에 미치는 불확정성을 제어하기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외에도 제어해야 할 불확정 요소가 훨씬 적었으리라 생각한다)
완다와 거상엔 스탯도 없다. 아이템도 없다. 말을 타고 달리고 활을 쏘고 거상에 매달려서 칼로 찍는 게 액션의 전부다. 조작계는 어이없게 단순하지만 움직이는 거상 자체가 스테이지가 되고, 물리 엔진이 얽히기 때문에 온갖 상황이 발생한다. 그런 와중에 스테이지가 되는 거상 자체가 움직이면서 탄성을 내지를 만한 비주얼이 연출된다. 완다와 거상은 이런 화면을 연출하고 싶어서 만든 게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확신만을 기반으로 생판 없던 게임을 만들기 시작해서 완성해가는 과정은 한 번 쯤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캐릭터가 화면 가운데 있지 않고 화면 왼쪽 아래나 오른쪽 아래로 가게 만드는 센스! 화면빨에 대한 집착은 정말 플레이 내내 주요 관전 포인트다)
재미있게도, 게임 자체는 어디선가 갑자기 솟아난 듯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으면 계속 몬스터 헌터 생각이 난다. 나름 몬스터 헌터에 3D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대형 적 캐릭터와 싸우는 액션이 있기 때문에 많이 참고를 한 걸까? 상황이 많이 닮았다는 느낌도 들고, 몬스터 헌터에서 이런 놈 본 듯 한데 싶은 거상이 몇 개 있기도 하고, 애초에 거상이 거상이라기보다 좀 용스럽기도 하다. 게임의 계통수 상에서 툭 삐져나온 완다와 거상이 무진장 게임스러운 몬스터 헌터와 상사적으로 닮은 느낌을 준다는 게 참 아이러니컬하다. 완다와 거상의 후속작은 나오기 힘들겠지만, 몬스터 헌터가 완다의 거상의 플레이를 차용한다면 재미있지 않을까? 몬스터 헌터는 게임 디자인이 미니멀(!)해서 좀 힘들겠다 싶긴 하지만 말이다.
(근데, 실은 이코는 하다가 때려쳤었다. 완다와 거상의 보스 시퀀스는 사실 보기보단 굉장히 고전적인 액션 게임의 전통을 따른다는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