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열고 정말 오랜만의 리뷰네요. 그간 기다려주신 분들이 계실까 모르겠는데, 심려
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하반기 기대작 후편을 올려야 하는데~하고 생각만 하고 있다가 후편에 리스팅된 게임이 나와버릴 정도가 되어버렸으니…. 실은 게임 블로그를 분리한 게 좀 실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업데이트가 뜸해졌는데,
어떻든 그렇다고 마냥 버려둘 수는 없어서 리뷰 갑니다. ㅎㅎ
EA가 직접 만드는 게임들은 보통 상업성은 짙지만 작품성은 그에 비해서 영 딸린다는 인상을 주는데, 이번에 리뷰할 게임은 그런 편견을 여지없이 깨주는 게임, 데드 스페이스입니다. EA Redwoord Shores라는 스튜디오에서 만들었는데, 2008년 E3 게임쇼에서 베스트 액션 상을 수상하는 등, 발매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은 숄더 뷰 3인칭 슈팅
거대 행성 채굴함 USG 이시무라
아래에 중력 벨트로 매달린 것이 부숴진 행성의 파편
데드 스페이스는 우주선 시스템 엔지니어인 아이작 클락이 USG 이시무라라고 불리우는 우주선에서 의료 기술자로 근무하는
여자친구인 니콜의 구조 신호 영상을 받고 조사하러 가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이 USG 이시무라라고 불리우는 우주선은 거대 행성 채굴함으로, 부족한 지구의 자원을 수급하기 위해서 행성을 부순 뒤 녹여서 자원으로 만들어 지구로 보낸다는 꽤나 터프한 설정의 우주선입니다.
순식간에 플레이어를 몰입시키는 오프닝 시퀀스
왼쪽 상단에 보이는 것이 USG 이시무라
오프닝을 거쳐서 USG 이시무라에 도착한 아이작과 동료들은 살아있는 사람의 흔적은 전혀 없고 피범벅된 선체를 보며 무슨 일이 생겼나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네크로모프라는 사납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들이 아이작 일행을 공격하고, 설상가상으로 이 네크로모프들이 이시무라의 중요 장치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아이작은 살아서 니콜과 만나 탈출하기 위해서 네크로모프를 죽이고 우주선을 수리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깔끔하게 게임에 통합된 인터페이스
인상적인 오프닝 시퀀스를 지나면, 가장 먼저 탄성을 내뱉게 되는 것은 체력 게이지의 연출입니다.
(완다와 거상 이후로?) 최근의 게임 인터페이스 트렌드는 게임이 복잡해
(=어렵게) 보이지 않도록 하고, 몰입감을 강화하기 위해서 가급적 명시적인 인터페이스를 덜 노출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데드 스페이스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릭이라고 불리는 의상의 척추 부분의 빛나는 부분이 채워진 정도로 체력 게이지를 표시하는 참신한 방식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반적인 게임에서 스타트 버튼이나 셀렉트 버튼을 사용해서 따로 띄우는 메뉴를 SF라는 설정을 활용, 홀로그램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이런 연출은 최근의 트렌드에 비추어 봤을 때 세련된 동시에, 인터페이스를 열고 있어도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들어서
호러 본연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적에게 쫓기다가 스타트 눌러서 여유있게 아이템 창 열고 허브 먹는다, 뭐 이런 거 안 통합니다)
가 봤자 뻔히 좋은 일 하나도 없는데, 진짜 가기 싫다…
이어 USG 이시무라에 승선하면 첫번째 네크로모프가 등장하는데, 이 때의 아이작은 무기를 들고 있지 않기 때문에 뛰어서 도망쳐야 합니다. 근데 이거 참, 조명은 어둡지, 네크로모프는 천정에서 뚝뚝 떨어지지,
마치 블록 버스터 영화의 초반 5분과 같은 긴박한 연출을 통해서 '아, 젠장 진짜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 싶은 생각에 게임에 몰입하게 해줍니다. 이런 인상적인 초반 도입부도 이후로도 호러 영화나 게임에서 정석이라고 할 만한 연출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듭니다.
어디서 기분나쁜 소리가 들리는데…
하지만 이런 연출들이 정석에 가까운 만큼 어찌 보면 클리셰인지라 호러 장르에 익숙한
(저같은) 사람들이 예측할 수도 있다고 한다면, 그럼에도 긴장감을 유지시켜주는 1등 공신은 뭐니뭐니 해도 사운드입니다. 공간감을 강조해주는 음장 연출은
정말로 네크로모프가 어딘가 숨어서 나를 공격하려고 다가온다는 느낌을 제대로 전해줍니다. 전 솔직히 이런 류의 음장 효과
(ex. 콘서트장)를 촌스럽다고 생각해왔는데 데드 스페이스를 플레이하고는 그 생각을 바꿨네요.
사지 절단 슈팅 액션은 돋보이는 세일즈 포인트
본격적으로 게임 플레이에 들어가면 플라즈마 커터란 무기를 얻게 되는데, 이것이 참 캐릭터와 게임의 개성을 동시에 살려주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주고 있습니다. 이 플라즈마 커터란 물건이 무기가 아니라 실은 공구의 일종인데,
우주선 시스템 엔지니어라는 아이작의 캐릭터에 맞는 동시에, 게임 플레이와 자연스럽게 연계되는 좋은 소품으로 동작합니다. '총질하는 게임 다 권총 기관총 저격총해서 똑같지…'라고 생각한 지 오랜데, 사지를 절단한다는 것 자체가 게임 플레이를 다채롭고 개성적으로 만들어주더군요.
사실 '조작이 불편해서' 무서운 감이 좀 있는 무중력 상태
사지 절단 무기가 슈팅 게임으로서 데드 스페이스를 유니크하게 만들어준다면, 호러 게임으로 데드 스페이스를 유니크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중력과 진공 상태입니다. 무중력 상태는 사실 프레이 등에서 본 적이 있어서 약~간 식상한 감이 있지만
SF라는 설정을 십분 활용해서 연출에 잘 활용한 편입니다. 위아래양옆 어디에서 적이 나타날 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주는 동시에, 퍼즐과 보스전과 같은 게임 디자인에도 적극 활용한 센스는 상당히 괜찮습니다.
진공이라는 상황이 주는 근원적인 공포감
진공 상태의 연출은 좀 더 훌륭해서, 플레이어가 진공 상태에 진입하면 공기가 빠져나가는 효과와 함께 등에 남은 산소 잔량이 표시되고 소리가 먹먹해지는데,
숨을 쉬지 못하게 된다는 근원적인 두려움을 자극하는 이런 상황에 네크로모프와 만나거나 퍼즐을 해결해야 할 때의 스트레스는 이전의 호러 게임엔 없었던 유니크한 경험입니다.
(음…. 뭐 솔직히 진공은 시간 제한을 추가하면 게임이 드라마틱해진다는 포탈 포스트모템 내용을 의식한 연출이기도 하고, 숨 못 쉬어 죽는 상황은 미스터 드릴러에서 본 적 있기도 하고 그렇습니다만 ㅎㅎ)
아이작, 등짝 좀 보자
앞서 게임 플레이와 비교하면 소소하지만,
캐릭터 리깅과 메카닉의 애니메이션 역시 주목해서 볼 만한 부분입니다. 플레이어가 항상 주인공 캐릭터의 등을 보고 있는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해서인지는 모르겠는데, 등 부분에 있는 판때기 같은 것들이 허리의 움직임에 따라 피부와 별도로 움직이도록 리깅해서 화면을 풍부하게 만든 것이 센스가 좋습니다. 이런 식으로 처리하려면 저 판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계산해야 해서 신경쓸 일이 꽤 늘었을 거란 말이죠. 가판대나 개조 벤치에 접속할 때의 메카닉이 변신하는 애니메이션 또한 인상적인 포인트입니다.
이것이 울룩불룩 곰보처럼 떡진 젤리 간지 (오블리비언)
또 하나 소소하지만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스피큘러를 퍼픽셀 노말 따라가지 않게 만든 점이네요. 콘솔의 메모리 한계 때문에
해상도를 낮춰놓은 노말맵 위에 스피큘러를 세게 먹이면 뭔가 곰보같고 떡진 젤리같은 인상을 줘서 CG티 팍팍 나고 후져보이는데, 데드 스페이스는 질감의 컨트라스트를 낮추고 디테일을 플랫하게 만드는 대신 AO와 라이팅에 집중해서 보다 통일감 있고 차분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거죠. 그러다보니 어떻게 보면 메탈기어나 ZOE 시리즈의 룩과 유사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So, is this game PERFECT?
참 간만에 기술적인 얘기 별로 안 하고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한 거 같은데, 그럼 데드 스페이스가 퍼펙트한 게임이냐, 하면 또 그렇진 않다는 게 복잡한 심경입니다. 여러가지 껄쩍지근한 점이 있지만 제가 가장 신경쓰이는 부분은 이 게임이 너무 짜깁기스럽다는 거예요. '그렇게 따지면 하늘 아래 새로운 게 뭐 있냐'라든가, '이건 오마쥬라고 볼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대놓고 다른 게임이나 영화에서 좋은 것들만 가져와서 엮자고 마음 먹고 만든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단 얘기입니다.
제작자들이 대놓고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는 이벤트 호라이즌
중간에 이런 모양의 장치에서 푸는 퍼즐이 나오는 챕터가 있습니다
일단 이벤트 호라이즌과 더 씽은 기본적으로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고, 장르가 SF 생물 재해 호러인 만큼 에일리언이나 하프라이프, 더 씽 게임, 바이오 해저드, 혹은 각종 좀비 영화의 영향은 피할 수 없다 치더라도, 아이언 맨에서 영향을 받았나 싶은 수트 디자인이나 프레이에서 가져온 무중력 상태 연출, 타임 시프트에서 가져온 스테이시스, 하프라이프에서 가져온 키네시스, 모 사일런트 힐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오프닝-엔딩과 유니톨로지 교단은
생각할 수록 껄쩍지근할 뿐만 아니라….
포탈 최고의 낚시, 케이크 구워놨어염 뿌우
유니톨로지 문자, Don't Believe The Lies에 주목
포탈 비밀 사이트, aperturescience.com
데드 스페이스 비밀 사이트, deadspace.ea.com/ibelieve
이쯤되면 낯이 좀 간지럽지 않나?
게임 후반에 벽에 가득 낙서로 남겨진 유니톨로지 문자쯤 가면 좀 오버해서
'너네 진짜 노골적으로 다른 작품들에서 모티브 가져왔잖아!'하는 물증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듭니다. 포탈이 워낙 성공적인 게임이니 오마쥬로 봐줘야지~ 싶다가도, 포탈은 오마쥬하기엔 시기상으로 너무 가까운데다 EA가 밸브보다 회사 규모가 훨씬 크잖아요! 이것만 해도 좀 낯 뜨거운 감을 지울 수가 없는데, 앞서 얘기한 다른 영화나 게임과의 유사성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껄끄러움이 더해진단 말이죠.
(이 게임은 진짜 독창적이고 참신한 건가? 아니면 공식대로 잘 계산해서 다듬어 만든 블록 버스터인가? 후자에 가깝긴 한데 그렇게 정리하기엔 뭔가 걸리적 거린단 말이죠. 과연 유저들이 '아, 이거 참 정석대로만 만든 게임이네' 그렇게 생각할까? UI나 진공 상태, 챕터 6 보스 같은 정도로 아이캐칭하는 부분 때문에 독창적이고 유니크한 게임이라고 기억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정석대로 만들면서 간간히 튀는 부분만 만드는 이런 전략도 괜찮은 거 아냐? 이런 생각도 들고 말이죠)
블랙 사이트 : 에리어 51의 보스
하이브 마인드와 마찬가지로 살덩어리 + 촉수라는 기본적인 공식에 충실
덤으로 데드 스페이스만 그런 건 아니지만, 대형 보스에 대한 미국인의 관념이 참 희안하다 싶은 점도 집고 넘어가야겠어요.
어째서 양인이 만드는 대형 보스는 항상 커다란 살덩어리에 촉수가 달려있는 것들인지? 암만 봐도 이런 류의 보스들의 모티브는 거대 오징어 괴물인 크라켄인데, '그렇게 오징어나 문어가 싫으냐' 싶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캡콤의 로스트 플래닛 보스는 전부 곤충인걸 생각해보면 동서양권의 문화 차이가 느껴지기도 하고 그렇네요.
공돌이가 세상을 구원할지니, 속편으로 다시 돌아온다!
뭐, 후반에 EA가 게임 잘 만들었길래 심사가 좀 꼬여서 막 까긴 했지만, 사실 데드 스페이스,
호러 게임 팬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습니다. 양인 호러 게임은 섬세하지 못한 심리 묘사 때문에 동양 호러보다 드라마에서 뒤쳐진다고 생각해서 낮게 평가해왔는데, 플레이어를 몰입시켜서 공포를 느끼게 하는 방식을 너무나 잘 다듬어서 다시 평가할 수 밖에 없더란 말이죠.
EA가 단단히 맘 먹었는지 프리퀄 애니메이션 DVD을 게임과 같이 발매하는 건 물론, 벌써 속편 준비하고 난리 났던데, 호러 게임 팬이라면 홀리데이 시즌 쏟아지는 게임 사이에서 데드 스페이스에 주목해보시는 것 꼭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