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리뷰할 게임은 <배틀필드 배드 컴퍼니>입니다. 사실 저는 <배틀필드 2142>을 구입한 뒤 EA 온라인에 등록하다가 뭔가 문제가 생겨 시리얼을 분실한 이후로 배틀필드 시리즈에 별로 좋은 인상을 안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배드 컴퍼니는 제 기대작 리스트에 일찌감치 들어와 있었습니다.
근데 그게 다른 분들처럼 오랜만에 포함된 싱글 캠페인 때문도 아니고, 트레일러에서 멋지게 보여줬던 건물 파괴 때문도 아니라, 그냥 '넓은 월드가 게임에 들어있는 게 신기하니까'라는 단순한 이유라서요…. 정발판임에도 자막이 안 들어있어서 스토리 파악도 잘 안 되고, 그렇다고 이전 시리즈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니라 게임 자체에 대해선 할 얘기가 별로 없네요;;;
좀 많이 예의가 없는 게임, <파 크라이 2 : 인스팅트>
이 게임은 월드만 예의없는 게 아니다
사실 넓은 월드를 게임에 포함시키는 건 <배틀필드 배드 컴퍼니>만 독특해서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이후에 발매될 <파 크라이 2 : 인스팅트> 같은 경우는 훨씬 더 넓은 50km×50km의 자연 환경을 게임에 포함시킨다고
동종 업계 종사자들을 협박하고 있고, GTA IV나
어쌔신즈 크리드[manari:vu] 같은 샌드박스 게임에서는 이미 장르적 특성화 되어 있을 정도로
넓은 심리스 월드가 보편적인 선택지가 되어가는 경향이 보입니다.
탁 트인 전원의 시야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면서
사실적인 몰입감을 더해준다
그럼에도 <배틀필드 배드 컴퍼니>가 여타의 게임과 다르다,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제가 아는 한) 커다란 지형을 절차적 기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만든 첫번째 게임이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그렇게 만든 넓은 지형을 저렴하면서도 높은 품질로 센스있게 텍스처링했다는 점입니다. 요는,
넓은 월드를 저렴하게 잘 만들었단 얘기예요.
간단한 규칙을 통해서 나무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절차적 생성
이 얘기를 설명하려면 일단 '절차적'이 뭔지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Procedural이란 영단어를 번역한 절차적이란 단어가 정말 한국어적 직관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보는데, 생각해보면 그 이전에 Process란 말 자체가 번역이 깔끔하지 않기도 하죠. 하여튼 게임 업계에서 절차적으로 뭔가를 만든다는 것은 넓은 의미로
어떤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자동 혹은 반자동으로 리소스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배틀필드 배드 컴퍼니>는 지형을 생성하는 데에 지오컨트롤이라는 절차적 지형 생성 도구를 사용했습니다. 사실 이런 류의 도구를 다른 게임의 지형 생성에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만, <배틀필드 배드 컴퍼니>처럼 넓은 자연 지형을 강 흐른 자국 등을 포함해서
사실적으로 디테일하게 생성하기 위해서 이런 도구를 사용했던 게임으론 처음 아닐까 싶어요.
지형의 잔주름을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는
획기적 지형 생성 도구 지오컨트롤,
인터페이스 역시 획기적이라 인간에게 이해가 불가능 (음?)
그런데 이 지오컨트롤이란 도구는 테라젠이나 브라이스, 뷰 에스프리, 모조월드, 월드머신 같은 동종 업계의 다른 지형 생성 도구와 비교해보면 무지막지하게 쓰기 불편하고 범용성도 떨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도구와 비교했을 때 특이하고도 강력한 기능이 있는데, 그것은
지형의 침식 효과를 매우 빠르게 생성하는 기능입니다. 다른 도구에도 비슷한 기능이 있지만 매우매우매우 느려서 실제 작업에 사용하긴 어렵거든요.
이런 짓을 지형의 모든 지점에 대해서
수천 수만번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무지막지하게 느리다
지형의 침식 효과를 표현하는 게 왜 느리냐? 간단히 설명하자면 정말로 지형이 수백 수천년 동안 바람과 열에 의해서 변해가는 과정을 그대로 계산해봐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형에 있는 모든 지점을 돌아다니면서 이 부근에 있는 토양이나 암석이 부서지고 쓸리고 날아가서 다른 곳에 쌓이는 과정을
무지막지하게 많이 반복해서 계산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지오컨트롤은 이걸 획기적으로 개선한 도구인 거지요.
지형이 침식된 흔적이 인상적인 <배틀필드 배드 컴퍼니>
이런 침식 흔적들이 결과적으로 <배틀필드 배드 컴퍼니>의 지형은 다른 게임에 비교했을 때, 상당히 사실적으로 보이게 만들어 줍니다. 물론
에이스컴뱃 6[manari:vu] 같이 실제 데이터를 사용한 게임과 비교하자면 미안해지는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만, 게임의 컨셉에 맞는
넓은 규모의 쓸만하고 그럴싸해보이는 가짜 지형을 만들어내는 방법으로는 적당했단 얘기죠.
지형이 서말이여도 텍스처를 발라야 레벨
근데, 지형 생성 과정에서 땅 모양 자체를 만드는 건 겨우 시작이예요. 넓은 땅을 만들었으면 이 넓은 땅에 텍스처를 발라야 할 거 아니예요? 이걸 사람 손으로 하자니 대책 없는 거고…. 네, 그래요.
지형을 자동으로 만들었으면 텍스처링 역시 자동으로 해야죠.
좌상 : 정확한 경사도 값, 우상 : GPU에서 계산한 경사도 값
좌하 : 한 종류로만 텍스처링한 이미지
우하 : 경사도 값에 따라 옆벽 텍스처를 발라준 이미지
<배틀필드 배드 컴퍼니>는 테라젠과 같은
지형 생성 도구에서 사용하는 방법을 간략화 시킨 방법을 사용합니다. 노말과 높이와 경사도를 사용했네, 뭐 이렇게 설명해봤자 감이 잘 오실 것 같지 않으니 그림으로 설명하지요. 풀만 발라놓은 지형
(왼쪽 아래)에 경사가 심해서 벽처럼 보여야 할 부분을 계산한 다음
(오른쪽 위), 그 부분에 절벽 무늬로 텍스처링해주면 자동으로 그럴싸한 이미지
(오른쪽 아래)가 나온단 얘기죠.
버텍스 단위로만 계산하면
저해상도 텍스처를 쓴 것 같은 이미지가 나온다
그런데 이때 두 종류의 텍스처가 섞이는 정도 계산을 버텍스 단위로만 해버리면 위처럼 굉장히 심심한 이미지가 나옵니다. 텍스처 해상도가 낮네 저사양이네 욕먹기 딱 좋고, 몰입감이 팍팍 깨져요. 이런 문제를 <배틀필드 배드 컴퍼니>는 간단한 방법으로 잘 해결했습니다.
위 이미지에 이런 마스킹 텍스처를
포토샵 오버레이처럼 오버레이해서
다채로워 보이도록 만들었다
픽셀 단위로 계산하지 않고도 텍스처가 섞이는 부분의 경계가 다채로워 보이도록 잘 만들었는데, 이런 부분의 센스가 참 좋습니다. 자세한 기술적인 내용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Terrain Rendering in Frostbite Using Procedural Shader Splatting[acm] 쪽을 참고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반자동으로 생성된 최종 지형
사실 지형 생성은 텍스처링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뒤로도 길도 깔고 나무도 심고 할 일이 꽤 많이 남아있습니다만, 그런 쪽은 <테스트 드라이브 언리미디트> 같은 게임에서도
잘 했었기 때문[teamxbox]에 스킵하도록 하지요. 어쨌든
이런 넓은 월드에서 게임을 할 수 있다니! 두근두근하지 않나요? 개인적으론 오블리비언을 이런 월드에서 한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컷신도 유머러스하고 수준급 이상
캐릭터의 AO 묘사도 주목할 만한 포인트?
게임 내용 자체를 언급 안 하고 끝내긴 좀 뭐하긴 해서 하는 얘기긴 합니다만; <배틀필드 배드 컴퍼니> 본 게임 자체도 꽤 괜찮은 편입니다. 컷신 연출이나 음악 센스도 좋고 유머러스한 대사 감각도 좋습니다. 탈 것 연출 센스 역시 맘에 드는데, 탈 것을 타면 적들이 더 강한 무기로 공격해서 더 빨리 죽어버리는 게임들 많잖아요? 아니, 일단 탱크 탔는데 짱 쎄야 되는 거 아녜요? 그런 게임과 비교하면
탈 것을 탔을 때 확실히 내가 세진 기분을 맛볼 수 있어 좋습니다. 좀 딴 얘기지만, <배틀필드 배드컴퍼니>의 싱글 캠페인도 어느 정도
샌드박스의 '형식적 특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순서에 무관하게 플레이할 수 있다'라든가, '명시적인 엔딩이 없다' 같은 내용적 측면을 떠나서 살펴보면, 넓은 월드, 마음대로 탈 수 있는 탈 것 (차량), 다른 FPS 게임에 비해서 비교적 높은 스토리 공략 자유도가 샌드박스의 형식적 특징에 부합해요.
밀리터리와 샌드박스의 결합은 솔직히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의외로 잘 붙는 걸 보면, 다른 장르의 게임들도 샌드박스의 형식적 특성을 더 차용해가는 경향은 점점 가속화되어 가리라 봅니다. 너무너무 게임 플레이가 재밌다든가, 기술적으로 꼭꼭 봐야 한다 그런 정도는 아니지만, 이런 경향을 살펴보는 정도로 해보실 만한 가치는 충분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