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스스로 공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기계에 대한 로망이 크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인지 비행기나 자동차 등 탈 것을 소재로 하는 게임에도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편입니다. 레이싱 게임 같은 경우는 좋은 자동차에 대한 로망도 크지 않은 편이라 그런지 애초에 왜 플레이하는 건지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할까요?;;;
같은 아케이드 성향의 게임도 그렇고, 정상적인 레이싱엔 이상할 정도로 흥미가 느껴지지 않더군요. 그래도 비행에 대한 로망은 좀 있는 편이라 비행기가 소재인 게임의 경우는 찾아서 하려고 했던 시절도 있긴 한데….
지상 타겟과 싸우다보면 어느샌가 지면과 충돌하고 있다든가, 기관총으로 도저히 적을 맞출 수 없다든가, 한참 날다보니 주변에 적도 아군도 없다든가, 아무리 해도 도저히 착륙할 수가 없다든가…등의 이유로 클리어한 게임이 하나도 없을 정도니 이쪽과도 그다지 인연이 없지요. 에이스 컴뱃도
이전작을 접해본 적도 없는데, 6편의 '세계에서 가장 포토리얼리스틱한 전장'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캐치프레이즈에 낚여 예비군 퇴소하자마자 사서 플레이를 시작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포토리얼리스틱한 전장,
이미지 출처는 이후로도 보시는 대로 gamespot.com
기체의 묘사도 이전에 비해서 크게 향상되었지만,
에이스 컴뱃 6 : 해방에의 전화(戰火)[acecombat.jp]의 가장 큰 체크포인트는 뭐니뭐니해도 포토리얼리스틱한 배경입니다.
기체 모델링이야 중국에 외주 주면 되거든요. 크레딧을 보면
디지털글로브[.]같은 위성 사진과 DEM 데이터를 제공하는 회사의 이름이 실려있는데, 실존하는 지형의 높이 데이터와 텍스처 데이터를 가공해서 게임의 배경을 만드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무료로 구할 수 있는
디지털 엘리베이션 모델 이미지
DEM이라고 하는 것은 Digital Elevation Model의 약자로, 간단히 말해서 위에서 내려다본 지도에 높은 곳은 흰 색에 가깝게, 낮은 곳은 검은 색에 가깝게 색칠한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위의 샘플 이미지는 낮은 곳부터 높은 곳으로 녹색-노랑-빨강으로 색칠한 것에 빛을 비춘 것인데, 이런 이미지에서 3D 데이터를 생성해내는 것은 간단하거든요.
일반적으로 무료로 받을 수 있는 DEM 데이터의 경우는 30m당 1샘플 정도의 해상도를 갖고, 상업용으로 판매되는 DEM 데이터의 경우엔 10m 이하의 높은 해상도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형의 색깔을 나타내는 항공 사진 이미지의 경우엔 품질이 높은 상업용 데이터의 경우 60cm~2m 정도의 해상도를 제공하는데, 말이 좋아서 1m당 1샘플이지, 가로세로 1m 크기의 공간이 한 가지 색깔로 표시된다는 말이거든요. 그 덕분에 에이스 컴뱃 6에서도 지면에 다가가면 낮은 품질의 화면을 보게 되지요.
지면에 다가갔을 때도 충분한 디테일을 유지하는 것이 힘든 이유는 저장 용량도 문제지만, 애초에
그 정도의 해상도를 제공하는 현실의 데이터가 전무하기 때문인데, 말하자면 에이스 컴뱃 6 수준의 화면은 이것저것 통틀어 현재 실시간 지형 렌더링 기술의 한계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지형 데이터를 사용한다는 건 손으로 만들 수 없는 현실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좋은 전략인데도 모든 게임이 그러지 못하는 건 지면에서 봤을 때의 해상도 한계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하와이 오아후 섬의 실제 DEM 데이터를 사용한 테스트 드라이브 : 언리미티드[teamxbox.com] 같은 경우가 상당히 예외적인 케이스지요)
효과가 아주 좋았던 비행운
그런데 막상 플레이를 해보니 배경도 배경이지만 의외로 비행운 쪽이 더 몰입감을 주더군요. 배경 쪽은 사실적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거니와 지상물 폭격을 위해서 가까이 가보면 해상도가 낮아져서 어느 정도 사진을 배경으로 플레이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데 반해서, 비행운은 비교적 가까이에 입체적이고 높은 품질로 생기기 때문에 공간감을 느끼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거든요. 생각해보면 지상으로 다가가면 품질이 떨어지는 거 뻔히 알면서 왜 그리 지상물 타격 미션이 많았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일본 쪽의 그래픽 잡지를 보니 에이스 컴뱃에 사용된 렌더링 엔진에 대한 기사가 있었는데, 하루 중 시각과 고도에 따라서 하늘 색깔이나 노출, 색보정 속성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점이 재미있더군요. 크라이시스의
샌드박스[crytek]에도 유사한 기능이 있지요.
흥미로운 것은 구름을 배치하는 방법이었는데,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구름이 움직이지 않고 사전에 배치된 형태로만 존재하는 플라이트 시뮬레이터의 방법론과 비슷하지만, 아티스트가 3D 상에 직접 구름을 배치하는 게 아니라 스테이지 전체와 대응되는 2D 이미지 상에 구름의 밀도를 그려넣으면 엔진이 알아서 구름으로 만들어준다고 하더군요. 생각해보면 비행운도 어차피 궤적을 따라서 자동으로 만들어져야 하니 생각이 닿는 범위긴 한데, 구름의 배치를 좀더 아티스트가 손대기 쉽도록 한 아이디어가 좋습니다.
주변의 여럿 이 갈게 만든 아이가이온, 속칭 가오리
입부분 구멍의 폭이 항공모함 폭 두배 쯤 되는 어마어마한 크기
그런데 게임 플레이로 넘어오면 그렇게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전반부 미션이 지상물 타격이 많아서 그냥저냥 플레이하다가 어찌어찌 아이가이온 나오는 데쯤 가니 급흥미가 느껴지긴 했는데, 이게 게임이 재밌어서였다기보단
ZOE2[.] 생각나서 그랬던 거라서요. '아니, 도대체 요즘 시대에도 이런 고난이도 플레이를 시키는 게임이 팔린단 말야?'란 느낌.
그럼에도 전작이 800만장이나 팔렸던 걸 보면, 이런 난이도가 대중적이라고 봐야 하는 건지 가치관의 혼란을 느꼈다고 해야할까요…. 북미 애들은 게임 난이도가 낮으면 싫어하기도 하고, 구매자 중 상당수는 굳센 비행 로망으로 난이도를 낮춰서라도 플레이할 지도 모른다고 멋대로 상상하는 중입니다. '6편째인데 설마 하는 방법 모르겠어?' 싶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튜터리얼이 플레이에 녹아 있지 않고 따로 메뉴를 띄워야 하는 것도 마음 속 감점 요인이었습니다. 일단 2000년대 게임답지 않잖아요!
프리렌더 동영상으로 게임과 별 관계없는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것도 그 분야 원조격인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가 낡아보이는 판에 굳이 차세대기에서도 이런 걸 봐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 감점이었구요.
(인게임 버전의 사람 리소스가 없었을 테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만…) 반면에 이전 시리즈에서도 그랬다고 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점점 나를 대단한 사람처럼 생각해주고, 후반이 되면 적들의 교신에서도 내가 누군지 웅성웅성거리는 상황은 내가 대단해진 것 같아서 꽤 즐겁습니다. 배워야 할 점이네요. 그레이스메리아 상공 정찰 미션의 불꽃놀이도 공중에서 보는 불꽃놀이가 낭만적이라 좋았습니다.